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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란 (蘭)

어릴 적 우리 집에 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시집간 둘째 누나 집엔 란이 흔했는데, 그래서 우리 집에도 란이 몇 개 생겼었다.

키울 줄을 몰라 점점 시들어가는 란이 죽기 전에 꽃이라도 한번 봤으면 하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는데 그런 기대는 싹만 나면 싹둑 잘라버리는 아버지의 가위질과 함께 잘려버렸다.

아버지의 논리는 새싹을 잘라야 지금 있는 게 잘 자랄게 아니냐는...

란만 그런 게 아니고, 아파트 마당 화단에 있는 꽃이든 뭐든 새싹 같은 게 나오려고만 하면 그냥 싹둑 잘라버려서 당신 집안에 있는 화초나 자르지 왜 남의 집 앞 화단까지 침범하여 맘에 들지 않는 가위질을 해대냐며 이웃들과도 마찰음이 잦았다.

그래서 남들 다 자는 새벽에 나와 가위질을 해버리는 근면함도 보여주셨다.

이건 일종의 독재자의 품성을 보여주는 거였고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행동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어쩌면 그렇게 당신 생각만 하냐...는 말을 나도 듣게 되고
아버지라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달달달 달리는 다람쥐가 된 거 같다.

란이라고?